딱히 보기 싫을 정도로 살이 쪄본 적도, 그렇다고 모델 부럽지 않은 스키니한 몸매를 가져본 적도 없다. 마치 ‘날 때부터 66사이즈’인 것처럼 평생을 살아왔지만 그나마도 이 정도의 몸을 유지하는 건 끊임없는 다이어트의 결과. 남다른 발육으로 이미 초등학교 때 160cm대를 가뿐히 넘긴 나는 그때부터 ‘덩치 콤플렉스’라는 것이 생겼을 정도로 오랫동안 다이어트에 집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학여행 사진만 찍으면 무슨 말단비대증 환자처럼 나오는가 하면, 150cm가 채 되지 않는 내 친구들은 나를 따르는 호빗족처럼 보이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덩치랄 것도 없는 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생활기록부에 기록된 것은 ‘163.3cm/47kg’. 몸무게만 보면 또래 친구에 비해 10kg은 더 나갔지만, 객관적으로는 꽤나 만족스러운 수치다. 물론 그때보다 뼈도 굵어지고 근육 양도 늘었지만, 요즘도 가끔 ‘그 몸만 유지했어도…’ 하는 한탄을 하곤 한다. 키가 자라는 속도보다 곱절이나 빠른 속도로 늘어난 체중에 나잇살이라는 가속도까지 더해져 47kg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몸뚱이가 돼버린 지 오래. 나이가 들수록 게으름도 늘어 피트니스는 고사하고 반신욕과 마사지조차 귀찮아졌다. 식욕은 넘치고 꼼짝하기는 싫고. 손에는 바삭바삭한 감자 칩을 든 채 다이어트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거리는 일상만 계속될 뿐.
귀차니스트, 럭셔리 단식을 꿈꾸다
귀차니즘과 의지박약이 만나니 할 수 있는 다이어트에도 한계가 있더라. 2년 넘게 계속해온 테니스는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그만두고, 피트니스 클럽에 가선 운동 대신 사우나만 하고 왔다.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에 짜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모 대학병원의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접하게 됐다. 어차피 휴가도 남아 있고 이래저래 연휴와 붙여 쓰면 얼추 2주는 쉴 수 있는 상황. 해외여행 한번 간다치고 과감하게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입원 이틀 전부터 흰쌀로 지은 죽과 과일만 먹어 위를 줄인 다음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한 채 다이어트 차로 연명(?)하는 프로그램. 하루에 700~800g 감량을 기본으로 2주 동안 최대 7kg 정도의 체중 감량이 목표다. 일과는 아침 7시 30분에 병원 주변을 산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산책 후에는 온몸에 지방 분해 전기침을 맞고, 3일에 한 번씩 식욕을 억제하는 이(耳)침이 추가된다. 독소를 배출하는 한약재를 넣은 욕탕에서 반신욕과 사우나를 하고 오후 6시에 다시 병원 주변을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 자율적으로 마사지 벨트나 파워플레이트(일명 ‘덜덜이’)를 사용할 수 있지만, 지루함을 떨쳐버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다이어트라면 어느 정도 이골이 난 내가 이곳을 선택한 단 하나의 이유는 집에서 마냥 굶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딱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학병원이라는 든든한 간판과 2백만원이 넘는 비용에 비하면 시설도 프로그램도 한참 부족했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사작된 생리로 반신욕과 사우나를 할 수 없었고 산책하기도 쉽지가 않았다. 생리 전에는 하루에 500g씩 꼬박꼬박 빠지던 것이 생리가 시작된 입원 4일째부터는 꿈쩍도 하질 않았다. 더욱이 화학제품인 화장품이 한방 치료의 효과를 떨어뜨린다며 샴푸나 화장품의 사용을 금지해 씻지도 바르지도 못하는 상황.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찝찝함과 엉망진창이 된 피부로 하루하루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살이 팍팍 빠지거나 아니면 뭔가 다른 즐거움이라도 있다면 위안이 되겠거늘, 고작 TV 시청 외에는 할 것이 없는 생활은 지루함에 욕창이 생길 지경. 결국 나는 탈출(말이 탈출이지, 면회와 외출이 자유로워 언제든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다)을 시도했고, 병원 근처 PC방에서 컵라면을 주문함과 동시에 ‘럭셔리 다이어트 1탄’은 끝이 났다.
의지박약, 약에 손대다
타고난 사수자리의 긍정적인 성향 덕분일까. 더 이상 옷으로 가리기도 힘들어진 뱃살에 허리 뒤까지 두둑해진 상태에 이르러서도 나는 초연함을 유지했다. 한 번도 제대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적은 없었지만, 나도 독하게 맘만 먹으면 5kg쯤은 가뿐히 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럭셔리 단식의 실패는 큰 충격을 주었다. 모든 것을 부실한 병원과 생리 탓으로 돌리려 했지만, 결국은 의지 부족. 그러고 보니 그동안 한 번도 원푸드 다이어트나 덴마크 다이어트에 성공한 적이 없다. “다이어트하자고 떠드는 순간에도 치즈 케이크가 당기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 나 정말 의지박약인가 봐.” 생크림을 듬뿍 올린 카페모카를 마시며 한탄하는 나에게 친구가 한방 다이어트를 권한다. 한방 병원에 가서 2백만원과 휴가를 날린 내 앞에서 또다시 한방 다이어트를 언급하다니, 도대체 내 말을 뭐로 듣는 건지 답답하기만 하다. “얼마 하지도 않아. 일주일에 4만원 정도? 내가 아는 동생도 그 약으로 8kg나 뺐어.” 8kg? 정말 그 정도로 효과가 있다면 아무리 못해도 2~3kg은 쉽게 빠지지 않겠는가. 게다가 친구 말대로 하다 안 되면 비싼 밥 한번 먹었다 생각하지 뭐. 한방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지만, 넘치는 식욕을 제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약’밖에 없다는 생각에 귀가 솔깃했다. 그래, 제니칼이니 리덕틸이니 하는 다이어트 약을 먹었을 때도 거짓말처럼 식욕이 떨어지지 않았나. 게다가 이 병원은 한 번 방문한 이후로는 전화만으로도 약을 주문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솔깃한 얘긴가.
결국 그날로 친구와 손잡고 신촌의 Y한의원을 찾았다. 이곳은 정로환처럼 생긴 환약을 쓰기 때문에 나처럼 일반 한약을 먹지 못하는 사람도 한번쯤 도전할 만하다. 하루에 다섯 번이나 챙겨 먹어야 하는 것은 다소 번거롭지만, 가지고 다니기도 좋고 물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먹을 수 있다는 점도 맘에 든다. 혈압을 측정하고 체성분을 분석한 뒤 의사와 간단한 상담을 했다. 예전에 약을 복용한 적이 있어 좀 강하게 조제하겠다고 한다. 뭐 효과만 확실하다면야. 계산을 하고 달랑달랑 약상자를 들고 병원을 나섰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약발’도 아무나 받는 게 아니다
이놈의 건망증. 약을 복용한 지 3일이 지나자 내가 왜 예전에 다이어트 약을 끊었는지가 생각났다. 일단 약은 분명 효과가 있다. 약봉지 하나를 입에 털어넣은 순간, 거짓말처럼 식욕이 사라졌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배가 고프기는커녕, 수십 번 양치질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 입 냄새로 물만 먹어도 헛구역질이 났다. 남들이 허겁지겁 뭔가 먹는 것을 보고 있으면 왠지 미련한 생각마저 들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분명한 성공. 그러나 한쪽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지는가 싶더니 심지어 3일째 아침부터 한쪽 팔이 가벼운 가방조차 들 수 없을 정도로 저려왔다. 병원에 전화해서 물어도 약에 적응하기 위한 명현 현상이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 그러고 보니 그전에도 비슷한 답변을 들은 거 같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증상은 심해졌고, 태생이 소심한 A형인 나는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약 복용을 중단했다.
이런저런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몸도 마음도 황폐해진 어느 날, 한 홍보 담당자를 만났다. 꽤 건장한 체구에 다소 과도한 복부 비만으로 고생하던 그는 바지 사이즈가 족히 3인치는 줄어 보일 정도로 몰라보게 날씬해져 있었다. 그를 붙들고 다짜고짜 비결을 물었다. “나 다이내믹 레이저 받았잖아~. 정말 최고야 최고! 돈 모아서 전신 받으려고~.” 다이내믹 레이저? 그러고 보니 몇 년 만에 컴백한 모 여배우가 일본에서 전신에 다이내믹 시술을 받고 왔다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 난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아직도 처녀 적 몸매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그녀를 떠올려보니 더욱 욕심이 난다. 쉬지 않고 해대는 설명을 들으며 홀쭉해진 그의 배를 바라보기를 몇 분, 최면에 걸린 듯 전화기를 들고 시술 예약을 잡았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다이어트?
막상 결심을 하긴 했으나 날짜가 다가올수록 겁이 났다. 정말 아프지 않을지, 피가 나거나 붓지는 않을지, 흉터가 남지는 않을지, 하나부터 열까지 걱정되는 게 너무 많았다. 시술 비용도 만만찮아 이번에도 실패하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간절했다. 전화를 걸어 준비할 건 없느냐고 물어보니 점심을 꼭 먹고 오란다. 그런 건 시키지 않아도 잘한다고요! 어쨌든 떨리는 마음으로 청담사거리에 위치한 린클리닉을 찾았다.
차트를 작성하고 족히 1백23번쯤은 해봤을 체성분 검사를 받았다. 검사 데이터를 가지고 준비를 하는 동안 사이즈를 측정해야 한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일회용 팬티 차림으로 서자니 민망하기 짝이 없지만, 살만 빠진다면 이 정도쯤이야. 침대에 누워서 기다리고 있으니 대형 청소기처럼 보이는 기계와 함께 의사 선생님이 방으로 들어왔다. 두근두근. 기계가 돌아가고 시술이 시작되었다. 온기가 느껴지는 마사저로 허벅지 이곳저곳을 문지른다. 살짝 뜨거운가 싶더니 이내 다른 곳으로 옮겨서 문지르고 또 문지르고. “혹시, 지금 시술 중인가요?” 너무 많은 걱정을 했기에 이렇게까지 간단한 시술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다이내믹 레이저(정식 명칭은 다이내믹 복합 레이저 지방 파괴술)는 지방 분해를 원하는 부위에 고온의 고주파와 다이오드 레이저를 쬐어 지방세포를 분리하고 수축시키는 시술이다. 분해된 지방은 2주에서 2개월까지 소변이나 땀으로 서서히 배출되는데, 열이 피하지방층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진피층의 탄력섬유를 자극하기 때문에 살은 빠지지만 피부가 처지는 현상이 없다. 물컹한 고기를 불에 구우면 부피가 줄어들면서 쫄깃쫄깃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 FDA의 승인을 받은 안전한 시술로 통증이나 출혈, 멍, 부기가 전혀 없고, 가격대가 높아 소위 ‘귀족 다이어트’라고 불린다.
편안한 침대에 누워 따뜻한 마사지를 받다 보니 깜박 잠이 들었다. 뭔가 분주함이 느껴져 눈을 떠보니 의사 선생님이 기계를 바꾸고 있었다. 다이내믹 레이저의 시술 시간은 부위와 비만 정도에 따라 보통 30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그 후에는 엔더몰로지로 다이내믹 레이저로 분해된 지방세포가 잘 배출될 수 있도록 한다. 롤러가 정신없이 돌아가며 청소기처럼 살을 빨아들이기를 30여 분, 엔더몰로지마저 끝이 났다. 방을 옮겨야 한다는 말에 침대에서 일어나니 머리가 어찔하다. 한 거라고는 2시간 정도 누워 있었던 게 전부인데 힘이 드는 걸 보니 이것도 시술은 시술이다. 주섬주섬 운동복을 챙겨 입고 다음 코스인 하이폭시 트레이닝을 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하이폭시 트레이닝은 공기를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면서 해발 1500m의 반진공 상태에서 사이클링을 하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신개념의 운동기구. 튀튀처럼 생긴 고무관을 허리에 끼우고 페달을 돌리고 있자니 E.T.가 따로 없다. 아, 오늘은 완전 굴욕의 날인가 보다. 편하게 살 한번 빼보려다 벌을 받는 기분이다. 20분 정도 운동을 하고 나니 특별히 더운 것도 아닌데 허리 아래로 옷이 흠뻑 젖었다. 오호라, 이거 운동 좀 되는데? 다른 부위는 보통 한 번만 시술받아도 효과를 볼 수 있지만, 허벅지는 앞과 뒤를 따로따로 시술해 이틀 후 다시 한 번 병원을 찾아 똑같은 순서로 시술을 받았다.
다들 궁금해하는 결과는?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다. 치수가 가장 정확하겠지만 그놈의 귀차니즘 때문에 아직도 병원에 가는 것을 미루고 있는 중. 사실 병원에서 당부한 운동은 고사하고 연말이라 연거푸 술까지 마셔서 양심상 병원에 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먹어댔는데도 바지가 불편하지 않고, 옆자리 후배가 계속 다리가 가늘어졌다며 다이어트 중이냐는 걸 보면 좀 빠지긴 빠졌을 거다. 게다가 눈에 띄는 효과를 위해 보통은 2~3번을 시술받는다니, 그 정도면 확실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분명 다이어트다. 시술만 받는다고 해서 살이 쑥쑥 빠지는 것이 아니라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해야만 확실한 효과가 있다. 게다가 추운 겨울, 단 한 발짝도 나서길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은 날짜를 맞춰 병원에 가는 것조차 귀찮을 때가 많다.
들어오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으면 신용불량자가 되듯 먹는 양보다 움직이는 양이 적으면 당연히 비만이 된다. 꼼짝하기 싫어하면서 날씬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거저먹겠다는 의미. 물론 가능하다면야 완전 ‘생큐’지만, 욕심을 부리는 것조차 어딘지 모르게 비만과 어울린다. 게으르고 탐욕스런 뚱뚱보 놀부처럼.